목소리 커지는 이익집단…점점 막히는 '소통의 길'…경제는 아프다

입력 2015-03-27 18:58  

공공선택 시각으로 본 사회 (2) 동맥경화에 걸린 민주주의

카르텔은 이익을 위해 '이웃을 궁핍하게 하는 집단'
유리한 法·예산 좇아 때론 로비·때론 격렬한 저항
이익집단 힘 커질수록 규제 양산…경제 성장 방해
多多益善?
少少益善!



동맥경화는 혈관에 노폐물이 쌓여 좁아지는 위험한 질환이다. 혈로가 완전히 막힐 때까지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생명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병이다. 동맥경화는 사회적 질환이기도 하다. 사람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도, 정부도 이 질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바야흐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경화(硬化)돼가고 있다. 민주주의 경화는 커다란 재앙이다. 이는 ‘이익집단의 로비’ 및 ‘재분배·복지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미래세대의 희생을 전제로 한 복지제도’와 ‘소규모 특수 이익집단의 지나친 영향력’이란 두 가지 치명적 취약성에 의해 서서히 경화 현상을 보인다. 이는 피상적이 아니라 근원적인 문제다.


왜 그럴까. 미국 경제학자 고(故) 맨서 올슨은 ‘국가의 흥망성쇠’(1982)란 책을 통해 사회가 나이들어감에 따라 경화되고 정체되는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익집단의 영향’에 주목했다. 부자가 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종전보다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것을 더 많이 빼앗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성공하려면 정치적 연고나 시장에서의 힘이 필요하다. 이익단체나 카르텔의 탄생 배경이 여기에 있다. 이익단체는 보조금, 조세 혜택, 독점, 자신에게 유리한 규제 등을 통해 관련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카르텔은 가격 인상이나 시장진입 금지 등의 수단으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회원의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다.

이익단체나 카르텔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웃을 궁핍하게 하는 집단’이며 올슨은 이들을 분배연합(distributional coalition)이라 불렀다. 분배연합은 생산 활동보다는 소득의 이전과 이권만 추구하는 비생산적인 집단이다. 이들 이익집단은 사회적 대격변이 발생할 때까지 살아남고 시간이 흐를수록 전문화되는 경향도 있다. 이런 집단행동의 논리를 토대로 올슨은 “국경이 변치 않는 안정된 사회에서 이익집단이 조직·결성돼 담합행위를 함으로써 경제성장이 정체된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민주주의가 성숙될수록 이익집단의 생성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전쟁이나 혁명 등 변혁이 일어나면 기존 정부가 무너지고 이익집단에 의해 보호받던 특혜조치가 일소(一掃)된다. 올슨의 주장이 옳다면 정치·경제적 격변으로 이익집단이 일소되는 국가들은 법 질서가 확립된 후에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일본과 옛 서독의 경우 독재 정권과 외국에 의한 점령이 기존 이익집丙?경쟁 억제적인 담합행위를 타파하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이익집단이 독점했던 자원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두 나라는 경제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

올슨의 추론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어떤 국가가 정치적 억압이나 대변혁 시기를 겪은 뒤 자유와 안정의 시기로 이행하는 경우 이 국가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기록할 것이다. 예를 들면 1990년대 한국과 대만은 독재정치로부터 벗어나면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오늘날 중국도 이와 같은 패턴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도 민주주의가 성숙하면서 이익집단이 조직·결성되고 경쟁 억제적인 각종 담합조치들이 쏟아지고 있다. 특혜조치는 갈수록 쌓이고, 이익집단은 이를 지키려 사력을 다하는 중이다. 그 결과 경제성장이 느려지고, 정체가 뒤따르며, 마침내 성장은 중지될 것이다. 이것이 올슨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다.

한편 민주주의 경화는 ‘정부경화(政府硬化)’도 초래한다. 민주주의가 경화되면 정부는 시대 변화에 적응하는 데 필수적인 시행착오 기능이 마비된다. 대규모 복잡계에서 성공적인 적응의 열쇠는 시행착오다. 생물은 돌연변이 과정에서 대부분 실패(멸종)하고 소수의 종(種)만이 살아남아 번창한다. 자본주의 경제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경제는 많은 실수를 하지만 재빨리 고치는 데에 경쟁력이 있다.

정부도 하나의 대규모 사회적 생태계다. 정부가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는 방법은 여러 시도를 해보고 실패한 것들을 재빨리 버리거나 조정하는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익집단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한 정책조차 함부로 수정·폐지할 수 없다.

민주주의 경화는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우선 입법 과정에 제로섬(zero-sum) 규칙을 도입하는 방법이 있다. 국회가 새 사업을 채택하는 경우 기존 사업 하나를 없애는 방법이다. 미국은 페이고(pay-go) 예산 제도를 통해 이를 실천하고 있다. 한국도 포퓰리즘 입법을 방지하기 위해 이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둘째,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다.

규제 철폐는 이익집단의 활동을 직접적으로 제한함으로써 공정한 자원 배분을 가능케 한다. 셋째, 이익집단의 요구에 저항하는 정치인을 투표를 통해 보상해주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를 모든 문제의 해결자로 생각하는 우리의 기대와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 경화’ 부르는 숨은 논리…多多益善? 少少益善!

‘민주주의 경화(硬化)’나 ‘정부 경화’는 민주적 정책결정 과정이 일반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소규모 특수 이익집단에 유리하게 이뤄지는 경향 때문에 발생한다.

정치적 행동을 하기 위한 집단을 조직하고 행동하는 데 드는 비용은 집단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집단행동의 문제’라고 한다. 우선 집단의 규모가 클수록 조직을 결성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어떤 이익이 발생하는 경우 그 집단에 소속된 구성원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몫은 그만큼 더 작아진? 이에 반해 소규모 이익집단은 적은 비용으로 조직을 유지하고 결속을 다질 수 있다. 대규모 집단 구성원 전체에 ‘약간의 손해’만 끼치는 사업이나 정책을 추구한다면 시끄럽지 않게 그 편익을 취할 수 있다.

미국의 군사용 모헤어(mohair·앙고라염소의 털) 보조금 사례를 보자. 미국은 1940년대 후반 비행기 조종사용 보온 재킷에 필요한 모헤어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했다. 당시에는 조종실로 열을 공급하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조종사와 승무원은 체온 유지를 위해 모헤어로 만든 재킷을 입었다. 이를 위해 텍사스, 애리조나 등지의 앙고라염소 사육 농가에 수백만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그런데 1950년대 들어 조종실에 열을 공급하는 장치가 개발됐다. 군사용 모헤어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마땅히 중단돼야 했지만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납세자 개개인이 지는 모헤어 보조금 비용 부담은 아주 작은 데 비해 보조금 폐지를 위해 집단을 조직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아주 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소규모 특수이익집단들은 ‘편익이 집중되고 비용은 분산된’ 정부사업이나 정책을 로비의 표적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편익이 집중돼 있는 경우 조직을 결성하기 더 쉬울 것이고, 비용이 분산돼 있는 경우 일반납세자 같은 반대자들은 조직을 결성하기 더 어려울 것이다.

이성규 < 안동대 무역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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